2017/04/13 20:22

영화 <문라이트>가 비추는 차별 영화

* 본 글은 영화 <문라이트>의 스포일러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이애미의 빈민가에 사는 흑인 소년 샤이론은 몸집이 왜소하고 성격이 소심하여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유일한 친구 케빈은 일진들과 샤이론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가끔 말동무가 되어주는 정도에 그친다. 어느 날, 샤이론은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 헐레벌떡 도망쳐 나와 외딴 폐가에 몸을 숨기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마약 창고였다. 그런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있던 그를 결국 창고의 주인 후안이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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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eek News Network]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그리고 문라이트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이라 자부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금껏 백인들만의 잔치, 이른바 ‘화이트 아카데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문제는 지속해서 곪아오다가 작년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후보가 2년 연속으로 모두 백인 배우들로 도배되며 결국 터져버렸다.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스파이크 리 감독, 제이다 핀켓 스미스 등은 시상식을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작년의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번 시상식에는 덴젤 워싱턴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펜스>, NASA의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을 다룬 <히든 피겨스>, 그리고 <문라이트>까지 흑인들의 삶을 조명한 작품들이 나란히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특히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기 전, 제74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무려 152관왕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며 오스카 수상의 전망을 한껏 밝혔다.

 올해로 89회를 맞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한 순간, 최우수 작품상으로는 문라이트가 아닌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라라랜드>가 호명되었다. 라라랜드의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무대로 밀려들어 수상의 기쁨을 누린지 얼마쯤 지났을까.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감격에 젖어 수상소감을 발표하던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단 호로비츠는 낌새를 알아챈 듯 자초지종을 듣더니, “착오가 있었다. 문라이트, 당신들이 수상자다”라며 잘못된 호명을 정정했다. ‘최우수 작품상 수상 번복’이라는 유례없는 해프닝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문라이트가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한 작품은 아니었기에 이러한 관심은 라라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문라이트라는 이름을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할리우드에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 혹은 흑인인권운동을 다루는 이야기는 해마다 몇 편씩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백인 배우들의 역할이나 그들의 티켓 파워를 무시할 수 없었다. 흑인 주인공이 나온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갱스터 장르를 제외하고는. 지금에서야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필두로 흑인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처럼 결코 유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흑인 감독에 의한, 흑인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영화계 한 해 최고의 영예를 거머쥐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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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JoBlo]

“제 이름은 샤이론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리틀’이라고 불러요.”

 누구나 크고 작은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어느 누구도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종차별, 성차별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멸시받는다. 서로 비슷한 집단 속에서마저 기어코 놀릴 거리를 찾아내고 만다. 아마도 어렸을 적에 별명이 없었던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름이나 외모의 특징을 응용한 별명이 주로 지어졌다. 그저 장난이었다는 말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곤 했던 순간들. 그 ‘장난’을 받아들이는 이가 기분이 상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닌 ‘희롱’이다.

 샤이론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흑인 빈민가 리버티 시티에 살고 있다. 리버티 시티는 마약상들의 밀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도무지 희망 한줄기 보이지 않는 삭막한 환경 속에서 샤이론은 왜소한 몸집과 소심한 성격 탓에 또래들에게 ‘리틀’이라 불리며 지속적인 왕따를 당한다. ‘친구’라고 하나 있는 케빈은 멀리서 측은한 마음으로 지켜보거나, 하는 수없이 왕따 행위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약자다. 그런 샤이론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어야 할 사람은 간호사인 홀어머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아이를 돌봐야할 의무가 있는 그녀조차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고 마약에 중독되어 하나뿐인 아들에게 폭언을 일삼는다. 샤이론은 외롭다. 어린 그에게 주어진 삶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기만 하다.

 어느덧 청소년으로 성장한 샤이론에게 일상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학교폭력이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결코 더 나아지지는 않은 모습이다. 물리적이고 언어적인 폭력, 편견으로 가득 찬 타인의 시선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이대로도 괜찮을 줄 알았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일생에 있어 단 한 번의 반항이었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주어진 대로만 살아온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동시에 묘한 쾌감을 자아낸 이 사건은 샤이론의 앞날을 더욱 암울한 색채로 뒤덮는다.

 문라이트는 평범하고 싶지만 결코 평범해지지 못하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자신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하는 삶이 아닌, 남들의 기대에 맞춰 순응하고 결정되는 삶이 묘사된다. 샤이론이라는 한 인격체가 지니고 있을 본연의 모습은 그가 약자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억압되고 배격된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이러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약육강식의 세계에 약자로 태어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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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outube]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Who is you, Chiron?” 케빈이 샤이론에게 의미심장하게 던지는 이 질문은 배리 젠킨스 감독이 영화를 매체 삼아 관람객들에게 선사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은 각자 영화 속 인물들을 거울삼아 자신들만의 답변을 마음 속에 품겠지만, 감독은 친절하게도 후안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꽤나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는다. “언젠가는 네가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이 대사는 문라이트의 전체 플롯을 관통하며, 상영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영화가 매분 매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린 샤이론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수도 있을 말이지만, 커가면서 그 의미를 종종 곱씹어봤을 것이다.

 궁지에 내몰렸던 샤이론에게 온화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어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후안은 아버지 같은 존재로 거듭난다.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며 자신이 어렸을 적 할머니가 해줬던 이야기를 샤이론에게 전해주며 편견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비록 샤이론의 엄마를 나락으로 이끄는 마약을 제공하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샤이론에게 있어 후안은 지난한 어린 시절을 꿋꿋이 이겨낼 용기를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눈부시게 자유롭고 찬란한 순간을 선물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등을 돌린다 해도 자신을 믿어줄 이,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인생은 값진 것이고 살아갈 만하다는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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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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